
처음에는 우리와 같은 평범한 택배기사 노동자로 보였던 술레이만(아부 상가레)은 사실 48시간 뒤에 프랑스 체류 자격 심사를 앞둔 기니인이다. 배달앱의 알람에 쫓기며 밤새 달리던 그의 일상은 브로커와의 만남으로 점점 긴박해진다.
정당 가입과 프랑스 정책을 암기하라고 강요하는 브로커는 갑자기 술레이만의 평범한 일상에 끼어든 것처럼 보인다. 난민 이전에 노동자처럼 보였던 술레이만에게 정치에는 하등 관심이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심사관에게 잘 보이기 위한 요령이라고 하지만, 짐작대로 심사관이 브로커의 존재나 난민들과의 관계를 모를 리가 없다.
술레이만의 상황을 이해하려면 기니의 정치적 문제보다 경제적 현실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실제로 기니에서 유럽으로 향하는 이주민들 중에는 정치적 난민도 있지만 경제적인 이유로 떠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문제는 유럽의 난민 제도가 박해를 피해서 온 사람들을 보호하는 데 설계됐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일부 난민들은 정치적 박해의 언어로 설명해야 한다는 압박도 있을 것이다. 브로커가 술레이만에게 정당 활동에 관해 암기를 시키는 이유도 정치적 박해의 서사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술레이만이 거짓말을 해야 체류 자격을 얻을 가능성이 높은 상황. 드디어 심사관 앞에 선 술레이만은 진짜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게 된다. 독재 정권에 맞서 싸웠다든가 정치범도 아니었던 그가 털어놓는 이야기는 그리 거창하지 않다. 가족을 먹여살려야 하는 의무와 기니에서는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는 그런 평범한 동기였다. 술레이만의 이런 절절한 고백은 할리우드 문법과 다르게 어느 순간 멈춰 버린다. 당혹스러운 결말일 수 있으나, 이미 관객들은 술레이만을 이해하게 되었고, 그런 불확실한 미래를 관객과 공유하게 만든다.
이 영화는 난민 문제를 설명하려는 것이 아니라 난민의 일상을 체험하게 한다. 난민이 된 원인부터 나열한 작품들은 대부분 전쟁과 박해, 종교 갈등부터 설명하고 시작한다. 감독은 파리의 거리를 질주하는 배달 노동자의 모습을 꽤 오랫동안 보여준다. 그 덕분에 관객들은 술레이만의 일상에 천천히 젖어들게 된다.
무엇보다 아부 상가레의 존재감을 빼놓을 수 없다. 실제 난민 출신인 덕분에 영화를 보는 동안 묘한 현실감이 있다. 배우의 본연인 '연기'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 자체가 다르다. 밤새 택배를 하는 동안에 비치는 불안한 눈빛, 어딘가 소외된 듯한 모든 태도가 너무 자연스럽다.
영화의 엔딩 크레딧은 아부 상가레의 이름부터 크게 보여준다. 이후 영화 스태프 이름들이 아부 상가레의 이름을 둘러싸고 있다. 아무런 음악도 없이 고요하게 끝내는 이 엔딩 크레딧의 연출에서 술레이만의 미래를 생각하게 만든다. 그러한 침묵 덕분에 더 먹먹하고 여운이 남는 작품이다.
한편 영화 '어느 파리 택배기사의 48시간(Souleymane's Story)'은 오는 17일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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